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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화교(華僑) 참전 용사를 추모하며

칼럼위원 권태오

기사입력 2022-05-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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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인 5151030, 서울 국립현충원 외국인 묘역에서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위서방(魏緖舫)과 강혜림(姜惠霖), 두 분의 화교(華僑) 참전 용사에 대한 추모행사가 유족들과 대만 대표부 공사(公使), 화교 단체가 주관하는 가운데 엄숙히 거행되었다. 2012515, 따로 떨어져 있던 유해를 이곳으로 모신 날을 기해 매년 개최해 왔으니 올해로써 10년째 된 행사였다.

강혜림 용사는 중국 산동성 출신으로 해방 전에 부모를 따라 평양으로 이주하였던 분으로 김일성의 폭정에 격분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고 평양이 수복되자 한국 육군 1사단 15연대 소속의 중국 수색대에 참가하여 수많은 공로를 세웠으나 19512, 경기도 과천 전투에서 27세의 꽃다운 나이로 산화하였다.

위서방 용사는 중국 안동성 출신으로 평양에 거주하다가 1948년부터 6.25 전쟁 발발 전까지 서(西)평양 장산탄광의 한국인과 중국인 광부 780명을 모아 대() 공산 유격활동을 하였고 이후 중국인 47명을 대동하여 육군 1사단의 수색대장으로 종군하였다. 그는 19501224일 고랑포지역에서 중공군 진지를 기습하여 처음으로 중공군이 38선 이남까지 진출해 왔음을 유엔군이 알 수 있도록 하였고 서울 재탈환 작전 시는 주저하는 유엔군에 앞서서 서울에 잠입, 중공군이 이미 서울을 포기하고 물러나서 서울이 비어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유엔군이 반격하여 현 휴전선까지 전선을 끌어 올리는데 기여하였다. 휴전 후에는 강원도 강릉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유족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1989년 소천하셨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만의 장개석 총통은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대만 군대를 한국에 파병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확전을 우려한 미국과 한국 정부의 만류로 그 뜻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한국에 거주하고 있던 화교들은 자원하여 참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 초기의 화교부대는 백선엽 장군이 지휘하던 1사단 예하 수색대로 활동하였는데 그들의 활동이 빛났던 것은 중공군이 대규모로 한반도로 진입하여 유엔군이 커다란 위기에 빠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낙하산을 타고 중공군 후방으로 침투하여 파괴, 요인 암살, 정보 획득, 사격 유도 등 특수임무를 수행하여 유엔군의 핵심적인 정보와 특수작전 수단이 되었고 이후 북파공작대에 편입되어 SC지대(Seoul China, 서울의 중국인)로 불리며 지속적으로 적지 침투와 공작 등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수가 이백여 명이었고 많은 분들이 임무수행 중 전사하였으나 현재 국립묘지에는 이 두 분만 안장되어 있다.

화교부대가 6.25 전쟁에 참전할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는 중화민국 즉, 지금의 대만(Taiwan)이었다. 당시 대만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고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던 국가였으나 결국 화교부대의 활동은 유엔의 승인 하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다.”라는 이유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늘 속에 가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한국 정부도 이들에 대한 보상에 인색하여 전쟁 후 20여 년이 지난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무공훈장이 아닌 종군 기장과 포장을 수여하였고,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에서도 제외하였던 것이다.

이분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참전(參戰) 대신 종군(從軍)이라 표현하고 전사하신 분들도 전사자(戰死者)라고 하지 않고 의사(義士者)라고 부르고 있으니 한편으로 지금 대국이 된 공산(共産) 중국의 영향이 이곳에도 미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며 이제 내년이면 정전 70년이 되는데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전쟁의 한 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한때 우리나라와 호흡을 같이 하며 동북아 반공 전선의 선봉에 섰고 전쟁 후 복구를 도와주며 우리의 절친한 친구이자 혈맹으로 인정되던 대만이 1970년대 이후 급부상한 중국에 의해 국제적 위상이 자리바꿈 되자 우리의 대() 대만 외교관계도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자연히 중국의 눈치를 보며 국내의 화교들에 대한 예우나 지원도 소홀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소홀함이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6.25 전쟁의 영웅과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대단히 안타깝다.

그나마 반가운 일은 그동안 외롭게 진행되어 온 추모행사에 이번에는 한국 측 인사들이 함께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국립국악원장을 지내신 한명희 선생이 참석하여 희생자를 추모하였고 그분의 대표 작품인 비목을 성악가 손재형씨가 공연하였다. 조금이라도 대만 화교 참전용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열의가 만들어낸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한국인의 관심과 발걸음이 꾸준히 확대되고, 참전 용사 유족회가 추진하는 작은 추모비 건립의 꿈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하며 정전 70주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정부에서는 그간 소홀히 하였던 대만과의 관계를 다시 복원시키고 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를 당부한다.

 

 

기자 (scshinm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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