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9-23 09:55

  • 박스기사 > 사설

난맥상 서천 군정, 리더십의 실종을 묻는다

기사입력 2026-08-27 15:30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지방자치가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는 화려한 수사의 나열이 아니라 주민의 팍팍한 삶을 보듬는 실천적 행정에 있다. 군민이 위임한 권력의 무게는 거창한 비전 선포식의 박수갈채가 아니라, 현장에서 흘리는 땀방울과 눈물을 닦아주는 책임감에서 증명된다. 
그러나 지금 서천군정이 보여주는 난맥상은 이러한 지방자치의 기본 원리와 현격한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거시적 미래 담론은 구체적 재원과 실행력 없는 ‘정치적 허언’으로 표류하고, 잿더미 위에서 처절하게 생계를 이어가는 민생 현장은 행정 편의주의와 밀실 행정에 짓밟히고 있다. 
최근 서천군이 발표한 민선 9기 핵심 공약 실천계획은 단체장의 리더십이 어디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군은 5대 분야 70개 공약을 제시하며 ‘군민 체감’을 역설했다. 그러나 포장지를 한 꺼풀만 벗겨내도 드러나는 알맹이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서천 검은 반도체 클러스터’, ‘서천형 기본소득’, ‘해양바이오 클러스터’, ‘청년 유입 골든벨’ 등 현대 행정의 유행어란 유행어는 모조리 끌어모았으나, 정작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연차별 재원 조달 계획, 제도적 인허가 절차, 명확한 추진 일정은 짙은 안갯속이다.
지역의 핵심 먹거리로 포장한 ‘김 산업 클러스터’의 실상은 더욱 참담하다.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을 공언하면서도 정작 현장에서는 기존 사업마저 줄줄이 중단되거나 기초적인 구상조차 멈춰 서 있다. 실체 없는 정책을 ‘클러스터’라는 거창한 말로 둔갑시켜 치적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군민을 기만하는 전형적인 ‘착시 유발 행정’이다. 예산의 뒷받침 없는 장밋빛 청사진은 언제든 공수표로 전락하며, 그로 인한 행정력 낭비와 정책 피로는 온전히 군민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공약의 부실함이 군정의 ‘기획력 부재’를 방증한다면, 2024년 대형 화재로 전소된 ‘서천특화시장 재건축 사업’을 둘러싼 파행은 ‘공감 능력의 결여’와 ‘관리 감독의 직무유기’를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330억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는 재건축 사업에서, 당초 상인들과 약속하고 공고했던 연면적은 10~20% 가까이 삭감되었고 점포당 면적은 고작 2.7평 남짓의 ‘쪽방’ 수준으로 전락했다. 
화재 참사 이후 차가운 천막 임시시장에서 하루하루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온 상인들에게 주어진 결과물이 고작 ‘3평 쪼개기 점포’라는 사실은 개탄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입찰 공고 지침의 자의적 해석,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설계 변경, 그 과정에서 배제된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지 묻게 만든다. 
상인들이 “특정 건설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밀실 행정”이라 규탄하며 형사고발과 소송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은, 행정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스스로 불신과 법적 분쟁을 배태했음을 의미한다.
행정의 근본은 절차적 공정성과 이해관계의 투명한 조율에 있다. 상인들이 원하는 것은 백화점식의 겉치레 명품시장이 아닌, 한 평이라도 더 넓고 안정적으로 물건을 진열하고 손님을 맞을 수 있는 ‘생업의 터전’이다. 상인들의 절박한 생존권 요구를 외면한 채, 발주처와 대행기관, 시공사의 편의에 끌려가는 행정은 무능을 넘어선 무책임이다.
서천 군정의 이러한 총체적 난맥상은 결국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군수의 리더십 위기로 귀결된다. 거창한 공약의 나열로 치적 쌓기에 몰두하는 사이, 정작 군수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재난 피해 상인들의 일상 복귀와 민생 현장은 철저히 방치되었다. 부서 간 칸막이에 갇혀 현장과 겉도는 관료주의를 서로 뜻이 통하게 하고, 중차대한 현안에서 공정성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 단체장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지금 서천군정에는 갈등을 돌파할 정치력도, 현장의 아픔을 헤아릴 온기도, 원칙을 지켜낼 행정적 결단력도 보이지 않는다.
지자체장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군민의 삶과 지역의 미래는 영속적이다. 서천군은 지금이라도 실체 없는 공약 남발을 멈추고, 사업별 실현 가능성과 재원 대책을 투명하게 공개해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아울러 파국으로 치닫는 특화시장 재건축 사업의 법적 하자를 엄정히 재검토하고, 원칙에 어긋난 입찰 절차를 중단한 뒤 상인들의 생존권이 온전히 담보되는 정상화 방안을 이끌어 내 ‘신뢰의 행정’으로 돌아오길 유승광 군수의 환골탈태와 책임 있는 결단을 당부해 본다.

기자 (scshinmun@naver.com)

  • 등록된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댓글0

스팸방지코드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