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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열심히 살까?

나호열 칼럼위원

기사입력 2026-09-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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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농업국가였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의심할 바 없는 국가 경영의 핵심이었다. 전통적 유교사회에서의 위계를 볼 때 농업(농부)은 공업(工)과 상업(商) 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다. 씨 뿌리고 거두는 긴 시간은 자연에 의지하여 거짓이 통할 수 없는 정직과 근면이 농부의 덕목이었고, 이는 또한 유교적 삶의 태도와도 일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생존의 기본인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의 기능이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의 위험성과 노동의 강도, 복잡한 유통 구조의 난맥으로 말미암아 농업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보람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낭패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안전하게 많은 재화를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 보편적 심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농업과 같은 1차산업을 넘어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고도의 판단력이 요구되는 재화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한 학기가 끝나가는 유월 어느 날 교정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여학생 둘이 이런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열심히 살까?’ 평범한 질문 같지만 ‘열심’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다. 
과연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을까? 마침 가르치는 과목이 ‘문학과 철학’. 칠판에 ‘사람들은 왜 열심히 살까?’를 쓰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잘 살기 위해서,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등등의 상식적이고 피상적인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한 학생은 묵묵부답. 그 학생에게 물었다. ‘왜 할 말이 없나?’하니 ‘저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아 해당이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전에 열심(熱心)은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힘씀. 또는 그런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일에 수동적으로, 타성적으로, 할 수 없이 일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학생은 학생으로서 마땅히 전념해야 할 학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모든 인간은 욕구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 번째 단계는 생리적 욕구로서 생존에 필수적인 수면, 음식물 섭취 등을 말한다. 2단계는 안전에 대한 욕구로서 건겅한 신체, 안정적인 경제 활동, 위험으로부터의 탈피가 여기에 해당된다. 3단계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로서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타인과의 원활한 교류를 꿈꾸는 것이다. 자기 존중의 요구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심리를 말하며,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증진시켜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이 답변이 그 학생에게 만족한 답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 대한 욕구가 불분명하다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매슬로우는 인간은 평생을 통하여 성장과 성숙을 꾀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으나 매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왜냐하면 아래 단계의 욕구가 만족할만하게 실현되지 않아도 우리는 윗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구는 우리를 열심히 살게 만든다. 그러나 욕구의 과잉이나 결핍은 열심의 의미를 무산시킬 수도 있다.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욕구를 무조건적인 재화의 충족으로 생각한다거나, 그 재화의 충족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실행할 때 화禍를 입는 경우가 그러하고, 자신이 욕구하는 바가 지나치게 미약할 때 자존감이 상실되기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매일 건강을 위해서 하루에 만 보를 걷는 것과 생존을 위해서 직장에서 만 보를 걸어야 하는 것은 그 의미 다르다. 그 행동들은 모두 열심이지만 자발적인 걷기가 놀이라고 한다면 일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 걷기는 노동에 해당된다. 
불로소득을 노리며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을 열심히 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 같은 염천에도 개미는 땅을 헤매고 배달 오토바이는 아스팔트를 녹인다. 지하철을 내리면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나는 아득한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일까?
 

기자 (scshinm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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